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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을 위해 싸운 영국 언론인 베델
icon 얼레빗
icon 2019-04-12 11:42:34  |  icon 조회: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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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10년 전 오늘은 “나는 죽을지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긴 어네스트 토마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한국 이름 배설-裵說)이 숨진 날로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5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한 영국인입니다. 베델은 1904년 3월 10일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Daily Chronocle)』의 특별통신원 자격으로 한국에 왔고, 코웬 ・ 양기탁 등과 1904년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 창간호를 발행하였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무자비한 조선침략에 대해 강력한 조선인의 저항을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힘썼습니다. 또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부터 일제의 부당한 침략 사건을 예로 제시하며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한편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직후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이날을 목 놓아 크게 통곡하노라”라는 명 논설을 게재하자 일제가 장지연을 체포하고 신문을 정간시켰는데 이후 <대한매일신보>가 <황성신문>의 역할을 대신했지요.

 

<대한매일신보>는 의병전쟁에 대한 상세한 보도를 한 것은 물론 일본군이 자행한 의병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과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잔인한 학살 행위를 폭로ㆍ비판했습니다. 그러자 일제는 베델을 몰아내기 위해 영국 대사관에 압박을 가하여 재판을 받고 갇히게 하기도 했지요. 그런 와중에서 1909년 5월 1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으며, 많은 한국인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한강변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무덤에 묻혔습니다.

2019-04-12 11: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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