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리랑카 담마끼띠 스님 "코로나19로 불교 緣起說 절감"
[인터뷰] 스리랑카 담마끼띠 스님 "코로나19로 불교 緣起說 절감"
  • 이희용
  • 승인 2020.03.06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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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에 마하위하라사원 건립…"보살행 힘쓰는 한국 불자 존경"
"분별심 없애는 게 중도"…다문화불교연합회 초대 회장에 추대

[인터뷰] 스리랑카 담마끼띠 스님 "코로나19로 불교 緣起說 절감"

아산에 마하위하라사원 건립…"보살행 힘쓰는 한국 불자 존경"

"분별심 없애는 게 중도"…다문화불교연합회 초대 회장에 추대

(아산=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스리랑카 출신 담마끼띠 스님이 충남 아산 마하위하라사원에서 연합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뒤로 석가모니 열반 장면을 담은 벽화가 보인다.

(아산=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충남 아산시 음봉면 신정리 한적한 도로변에 다갈색과 흰색 외벽의 남아시아풍 2층 건물이 눈에 띈다. 마당 입구에는 '마하위하라사원'이란 한글과 스리랑카어(싱할라어) 글씨를 앞뒤로 새긴 대형 입간판이 방문객을 맞는다.

5일 오전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주색 승복 차림의 훤칠한 외국인 승려가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다. 마하위하라사원 주지이자 한국다문화불교연합회(다불연) 초대 회장인 담마끼띠(37) 스님이다.

밖에서 볼 땐 2층 건물인데 들어와서 보니 법당은 천정이 트인 단층이고 오른쪽은 3층으로 돼 있다. 정면의 수미단에 앉은 석가모니불 상호(相好)가 이국적이다. 좌우로는 석가모니 10대 제자로 꼽히는 사리불과 목련존자가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 절 가운데 본존불을 보좌하는 협시보살 대신 사리불과 목련존자를 모신 곳은 여기가 유일합니다. 두 분 덕분에 불교가 널리 퍼질 수 있었죠"

오른쪽에는 석가모니 열반 장면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불탑 모양의 황금빛 사리함과 유리로 된 책장·장식장이 놓여 있다.

"이곳에 안치된 불사리는 한국 태고종의 한 스님이 30년 전 스리랑카에서 이운해왔다고 합니다. '스리랑카로 돌려주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이곳으로 오게 됐죠. 책장에 있는 패엽경(貝葉經)은 최초로 부처님 말씀을 야자나무 잎에 새긴 겁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한국의 자랑이듯이 패엽경은 스리랑카의 보물입니다"

(아산=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담마끼띠 스님이 석가모니불을 향해 스리랑카식으로 합장 배례하고 있다. 오른쪽은 목련존자상이다.

한동안 법당 장엄물과 소장품에 관한 설명이 이어진 뒤 스리랑카산 홍차를 놓고 마주 앉아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스님의 휴대전화가 수시로 울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행사나 모임을 미룬다거나 누구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기자의 휴대전화에도 인근 천안에 추가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긴급 안내문자가 들어왔다.

"지난 주부터 일요 법회를 중단하고 SNS(사회적관계망서비스)로 법회를 중계하고 있습니다. 셋째 주 토요일 한국인을 위한 법회도 이번 달에는 힘들 것 같네요. 제가 출강하는 동국대도 개강을 연기했습니다. 다음 주까지도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으면 온라인으로 강의해야 합니다. 다불연이 마하위하라 사원 주관으로 4월 5일 유원대 아산캠퍼스에서 '세계불교법회·탁발 공양' 행사를 열기로 한 것도 6월 7일로 미뤘죠"

담마끼띠 스님은 감염병의 급속한 확산이야말로 불교 연기설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주 만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인과관계로 엮여 있음을 절감하게 하고 우리가 사는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예전과 비교하면 이제 우주는 한 나라이고 한국과 스리랑카는 이웃 마을인 셈입니다. 바이러스만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리랑카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관광객과 일자리가 줄어들어 고통받고 있습니다. 한국은 중국 영향으로 미세먼지가 심해졌고 스리랑카는 지구온난화 탓에 평균기온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도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아산=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담마끼띠 스님이 불탑 모양의 황금빛 사리함을 모신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담마끼띠 스님은 스리랑카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캔디에서 3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바로 위인 누나와도 15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였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스님인 큰아버지가 "나중에 출가할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현실이 됐다.

"7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큰아버지 절에 갔다가 분위기가 좋아 '집에 안 가고 여기서 살겠다'고 말했어요. 3년간 살아보고 결정하자고 했는데 10살 때 정식으로 출가했습니다. 어머니는 서운한 마음에 반대하셨지만 아버지는 큰 공덕을 얻는다고 여겨 찬성하셨습니다."

한국에 처음 온 것은 스리랑카 국립캘라니아대 4학년 때인 2005년이었다. 팔리어(산스크리트어와 함께 불경을 기록한 인도의 고대 언어) 특강을 하러 서울을 방문했다가 성북구 안암동의 한 가게에서 훗날 한국 불교의 은사가 된 개운사 주지 공운 스님 일행을 만났다.

"스리랑카는 상좌부불교(남방불교)입니다. 반야경을 접하고 대승불교를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초엔 영국에 유학하려고 생각했다가 조계종 스님들을 만나고 한국 사찰을 답사하면서 한국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국인들의 따뜻한 정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저를 이끌었죠."

(아산=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담마끼띠 스님이 아산에 마하위하라사원을 창건한 취지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2006년 다시 입국해 연세대 한국어학당을 다닌 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와 동국대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학위를 땄다. 박사논문 제목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공(空) 사상에 관한 연구'다.

처음에는 개운사에서 지내며 대학원을 다녔다. 스리랑카에서 온 유학생들을 모아 자비불자회를 결성, 법회도 이끌고 한국 문화 체험도 함께했다. 2009년 공운 스님이 경기도 평택의 도원사로 옮겨가자 따라 내려갔다.

이곳에서도 스리랑카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이었다. 20014년에는 임시 건물에 복지시설 마하위하라센터를 차리고 법회, 상담, 한국어 교육 등을 실시했다. 마하위하라는 '행복이 머무는 곳'이란 뜻이다.

"서울로 통학하는 데만 하루 5시간이 걸렸어요. 공부도 하고 예불에도 참여하고 법회도 이끌려니 너무 바빠 정신이 없더군요. 학교 근처에 원룸을 얻거나 기숙사에 들어갈까도 생각했죠. 힘은 들었지만 절에서 대중과 함께 생활하며 학교에 다닌 덕분에 한국 사회에 더 빨리 적응하고 한국 불교 문화와 전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산=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담마끼띠 스님이 마하위하라사원 입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로 법당 건물이 보인다.

그의 숙원은 독립된 스리랑카식 사원을 짓는 것이었다. 2016년부터 모금을 시작했다. 중간에 부동산업자에게 속아 복지시설은 지을 수 있으나 종교시설을 지을 수 없는 땅을 잘못 사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마을 주민들이 외국인 종교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해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2018년 초 예멘인이 제주도로 대거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자 이슬람 사원이 만들어진다는 오해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5월 19일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개원 법회를 열었다.

"목표는 계좌당 5만 원의 후원회원 1만 명을 모집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절반가량 모금했죠. 아직 법당 내부 공사도 마무리되지 않았고 요사채도 지어야 합니다. 그래도 국내의 외국인 사찰 가운데 가장 먼저 독립 건물을 지어 뿌듯합니다. 천안의 베트남 사찰 원오사는 한국 전통사찰을 바꾼 것이죠. 나머지는 다 상가 건물에 입주해 있는 형편입니다."

담마끼띠 스님은 지난해 12월 1일 서울 조계사 경내의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창립법회를 연 다불연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스리랑카·베트남·네팔·몽골·태국·캄보디아·미얀마 등 8개 외국인 법당이 참여했다. 그동안 친목 도모 차원에서 만나다가 정보도 교환하고 힘도 합치기로 한 것이다.

(아산=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담마끼띠 스님이 15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며 느낀 점을 털어놓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법문하거나 상담할 때 어떤 말을 자주 하느냐고 묻자 "중도(中道)"라고 대답했다. "돈을 벌려고 낯선 땅을 찾아온 처지에서 욕망과 집착을 버리면 더 큰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면서 "다만 극단적인 욕망을 추구하기보다 중도의 삶을 유지하는 데 힘쓰라고 설득한다"고 덧붙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중도는 있음과 없음, 좋음과 나쁨 등의 중간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양팔저울의 받침점을 없애 분별심이 사라지게 하는 게 바로 중도입니다. 이걸 깨달아야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할 수 있죠."

한국 불교의 장단점을 꼽아 달라고 하자 "500년의 유교 사회와 기독교의 물결 속에서도 전통을 지켜온 것을 높이 평가하고 대승불교 정신에 따라 복지와 윤리 등 보살행에 힘쓰는 태도가 존경스럽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것보다는 복을 비는 데 더 매달리는 것처럼 느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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